
[오토모닝 정영창 기자] 롤스로이스모터카가 현지 시각으로 지난 22일, 브랜드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모델 ‘팬텀(Phantom)’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팬텀과 전 세계 대중음악계가 함께해온 여정을 조명했다.
25일 회사에 따르면 롤스로이스와 대중음악의 인연은 음반 산업의 역사만큼 오래됐다. 듀크 엘링턴, 프레드 아스테어, 카운트 베이시, 라비 샹카르, 에디트 피아프, 샘 쿡 등 전설적 아티스트부터 존 레논, 엘비스 프레슬리, 퍼렐 윌리엄스에 이르기까지 롤스로이스는 시대를 대표하는 이들에게 성공과 예술성의 상징으로 자리해왔다.
그 중 롤스로이스의 정점인 팬텀은 음악계와 가장 깊은 관계를 맺어온 모델이다. 8세대에 걸친 100년의 역사 속에서 창의적이고 영향력 있는 인물들의 선택을 받아온 팬텀은 오늘날에도 세계 최고의 럭셔리카로 군림하며, 소유주의 개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궁극의 캔버스로 사랑받고 있다.
크리스 브라운리지 롤스로이스모터카 CEO는 “할리우드의 황금기부터 힙합의 부상에 이르기까지, 지난 100년간 음악 아티스트들은 팬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관습에 도전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의 팬텀은 종종 그 자체로 아이콘이 되어 현대음악사에 길이 남았다. 이는 롤스로이스와 그 역사를 함께해온 비범한 인물들이 공통된 열망, 즉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로 이어져 있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마를레네 디트리히: Falling in Love Again= 독일 출신의 배우 겸 가수인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영화 ‘푸른 천사(The Blue Angel)’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이후 자신의 상징적 곡이 될 ‘Falling in Love Again’을 선보이며 전세계적 인기를 한 몸에 누렸다. 1930년 영화 ‘모로코(Morocco)’ 촬영을 위해 캘리포니아에 도착했을 때, 파라마운트 스튜디오는 꽃다발과 함께 녹색 롤스로이스 팬텀 I을 선물하며 그녀를 맞이했다. 이 작품으로 디트리히는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고, 팬텀 역시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홍보 이미지에 등장하며 주목을 받았다.
엘비스 프레슬리: All Shook Up= ‘로큰롤의 제왕’이라 불리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명성이 절정에 달했던 1963년, 그는 다양한 비스포크 요소가 반영된 미드나잇 블루 색상의 팬텀 V를 주문했다. 차량용 노래방의 초기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차량에는 마이크와 영감이 떠오를 때를 대비한 뒷좌석 암레스트 내 필기구 세트, 그리고 엘비스가 언제 어디서든 무대에 설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거울과 옷솔이 마련돼 있었다.
이 차량의 거울처럼 빛나던 외장은 엘비스의 어머니가 기르던 닭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닭들이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쪼아 흠집이 생긴 일화로도 유명하다. 이후 차량은 흠집이 눈에 띄지 않는 은빛의 라이트 실버 블루 컬러로 다시 마감되며 새로운 모습을 갖추었다.

존 레논: Love Me Do= 1964년 12월, 존 레논은 비틀즈 영화 ‘하드 데이즈 나이트(A Hard Day’s Night)’의 성공을 기념해 팬텀 V를 주문했다. 외관은 범퍼와 휠캡, 창문까지 모두 검정으로 마감됐으며, 실내에는 칵테일 캐비닛, 텔레비전, 트렁크 냉장고가 갖춰졌다.
1967년 5월, 새 앨범 발매를 앞두고 레논은 팬텀을 노란색으로 재도색하고 빨강·주황·초록·파랑의 소용돌이 문양과 꽃무늬 측면 패널, 자신의 별자리인 천칭자리 문양을 더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시켰다.
이 팬텀은 젊은 세대에게는 같은 해 촉발한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 문화 운동의 상징이 되었지만, 기성세대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런던 피카딜리에서 이 차량을 본 한 여성이 “어떻게 롤스로이스에 이런 짓을 할 수 있죠!”라고 외치며 우산으로 차체를 때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985년 경매에 출품된 이 차량은 예상가의 10배인 229만9000달러에 낙찰됐고, 당시 가장 비싼 로큰롤 기념품이자 경매에서 판매된 자동차 중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그는 또 다른 팬텀 V도 소유했다. 1968년 ‘White Album’의 발매와 아내 오노 요코와의 새로운 삶을 기념해 구입한 이 차량은 본래 검정색과 녹색 투톤으로 제작됐으나, 레논이 추구하던 간결함의 미학에 맞춰 내외장이 모두 흰색으로 개조되었으며, 여기에 선루프, 턴테이블, 전화기, 텔레비전 등 다양한 사양이 추가되었다. 차량은 이후 비틀즈 영화 ‘렛 잇 비(Let It Be)’와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가 출연한 영화 ‘퍼포먼스(Performance)’에도 등장했다.

리버라치: I’ll Be Seeing You= 1950~60년대 TV 프로그램과 라스베이거스 장기 공연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엔터테이너 브와지오 발렌티노 리버라치는 ‘쇼맨십의 제왕’으로 불렸다. 리버라치는 차체 전체를 수많은 거울 조각으로 장식한 1961년형 팬텀 V를 제작해 무대 위로 직접 몰고 등장했고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이끌었다. 이 팬텀은 이후 마이클 더글러스가 주연한 리버라치 전기 영화 ‘비하인드 더 캔들라브라(Behind the Candelabra)’에도 등장하며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엘튼 존: 로켓맨을 위한 드라이브= 리버라치의 영향을 받은 엘튼 존은 여러 대의 팬텀을 보유했다. 그는 1973년 팬텀 VI를 타고 맨체스터 공연장으로 향하던 중, 쇼룸에 전시되어 있던 최신 모델을 보고 즉시 구입해 그 차로 공연장까지 이동했다. 이후 이 팬텀은 검정색 외관과 가죽 시트, 틴팅 처리된 창문, 텔레비전과 비디오 플레이어, 팩스 등을 갖춘 차량으로 개조됐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추가 사양은 볼륨을 높였을 때 유리가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강화 작업까지 필요했던 강력한 비스포크 오디오 시스템이었다.
그는 분홍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독특한 팬텀 V도 소유했다. 소련 투어에서 현금 대신 석탄으로 출연료를 받은 엘튼 존은 연주자들에게 보수를 지급할 수 없게 되자, 이 팬텀을 타악기 연주자 레이 쿠퍼에게 대신 내주었다. 이 차량은 훗날 블러(Blur)의 리더 데이먼 알반과도 인연을 맺었으며, 데이먼 알반에 의해 탄생한 가상 밴드 고릴라즈(Gorillaz)가 2020년 ‘The Pink Phantom’을 녹음하면서 엘튼 존을 객원 보컬로 초대한 것은 그 상징적 인연의 연장선이었다.

키스 문: Won’t Get Fooled Again?= 더 후(The Who)의 드러머 키스 문은 자신의 21번째 생일 파티에서 롤스로이스를 호텔 수영장에 빠뜨렸다는 전설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 이야기는 엇갈린다. 1972년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사실 다른 투숙객의 링컨 컨티넨탈을 수영장에 밀어 넣었다고 밝혔으며, 또 다른 목격자들은 “애초에 어떤 차도 물에 들어간 적 없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상상 속에서 ‘수영장에 빠진 자동차’는 곧 롤스로이스로 굳어졌고, 이는 로큰롤 이미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팬텀 탄생 100주년과 로큰롤에서의 상징적인 위상을 기념해 롤스로이스는 재활용 예정이던 팬텀 익스텐디드 프로토타입 차체를 영국 플리머스의 아르데코 양식의 명소, 틴사이드 리도 수영장에 잠기게 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이 전설을 현실로 재현했다.

힙합과 팬텀= 2003년 굿우드로 이전해 생산을 시작한 이후 롤스로이스는 현대음악과의 유대를 더욱 강화해왔다. 특히, 힙합의 비약적인 성장에 힘입어 2016년 롤스로이스는 노래 가사에 가장 많이 언급된 브랜드로 기록되기도 했다. 2004년 퍼렐 윌리엄스와 스눕 독은 ‘Drop It Like It’s Hot’ 뮤직비디오에 팬텀 VII를 등장시켰고, 이 곡은 3주간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하며 팬텀과 힙합 아티스트들의 지속적인 연결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 50센트는 TV 시리즈 ‘안투라지(Entourage)’에서 팬텀 VII 드롭헤드 쿠페를 몰며 대중적으로 화제가 된 장면을 남겼고, 릴 웨인의 ‘Tha Carter II’는 팬텀을 커버에 등장시킨 수많은 앨범 중 하나였다. 또한 힙합은 롤스로이스의 상징적 비스포크 요소인 스타라이트 헤드라이너(Starlight Headliner)를 대중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Stars in the roof(지붕 속의 별들)’이라는 구절은 수많은 랩 가사 속에 반복되며 롤스로이스 소유를 상징하는 시적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팬텀의 영원한 유산= 팬텀은 현대음악사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하며 존재해왔다. 시대마다 아티스트와 혁신가들에게 자기표현과 열망, 정체성의 수단을 제공해온 팬텀은 탄생 후 두 번째 세기에 접어든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공과 개성, 그리고 인간의 상상력이 가진 힘을 상징한다.

정영창 기자 jyc@automorni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