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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최초의 국산자동차는 ‘드럼통’

우리나라의 최초의 자동차가 ‘시발’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발’이 드럼통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을 듯하다. 어떻게 드럼통을 개조해 자동차를 만들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의 자동차산없이 본격적으로 시작된것은 1950년대 즈음이었다.전쟁 직후라 경제는 극도로 어려웠고, 기술력이 낙후한 것은 물론이며 전문 인력도 많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는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이 기틀을 마련한 때다.

방법은 한국전쟁 후 폐차로 남아 있던 트럭, 지프, 쓰리쿼터와 같은 군수용품과 미군으로부터 받은 차량을 개조하는 것이었다.

일명, ‘드럼통 차’ 라고 불리는 최초의 국산차량, ‘시발’이 제작된 것은 1955년 8월이었다.서울에서 정비업을 하던 최무성, 혜성, 순성 3형제와 국내 유일의 엔진 기술자였던 김영삼은 미군으로부터 받은 군용차의 엔진과 변속기, 차축 등의 부속품을 이용해 자동차를 제작했다. 여기에 드럼통으로 제작된 차체를 씌워 지프형 승용차였던 시‘(처음,始) 발(필,發)’을 만든 것이다.

국산화율이 50%나 되어 긍지를 느끼게 했던 이 차는 그러나 그 외장이 아주 튼튼하지도,세련되지도 못했던 것 같다. 드럼통을 망치로 펴서 차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그 외관이 투박하기 그지없다.‘시발’은 한 대 만드는데 무려 4개월이나 걸렸고, 8만 환이라는 당시로서는 높은 가격으로 인해 정작 이 자랑스러운 첫 국산차를 구입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 드럼통 차량 ‘시발’의 발전은 그해 10월부터였다.광복 10주년을 기념해 경복궁에서 열린 산업박람회에서 최무성 씨는 한결 성능이 업그레이드된 ‘시발’을 출품, 최우수 상품으로 선정됨과 동시에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그는 대통령상을 받은 후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1억 환 이상의 계약금을 손에 쥘 수 있었고, 그 돈으로 공장을 짓고 시설도 제대로 갖추어 양산 체제로 돌입 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시발’은 더 이상 드럼통 차가 아니었다.

‘시발’이 보여주듯, 우리나라의 자동차산업은 이렇게 열악하게 시작돼 급속도로 성장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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